카이사르의 죽음은 정당한가
요약 : 카이사르의 암살에 대해서 현대법과 로마법, 그리고 도덕의 관점에서 그것이 옳은 행위인가 판단해 본다. 우선적으로 현대법으로 보았을 때 카이사르는 독재자였지만 사형에 처해질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고, 카이사르의 암살은 법에 의한 심판이 아니라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에 속하기 때문에 암살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로마법, 즉 코르넬리아 법의 관점으로 이 암살을 보았을 때도 브루투스와 그 일당들은 흉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고의로 살해한 것이므로 살인죄가 성립되어 암살은 위법행위라고 판단이 된다. 도덕적으로 본 카이사르는 그가 성적인 부분에서 도덕적으로 결여된 부분이 있으나, 그것 때문에 사형을 언도받기에는 과한 감이 있다고 판단하여,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도 암살이 정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요어(key words) : 카이사르, 도덕, 현대법, 코르넬리아 법
Ⅰ. 서론
1. 연구 동기 및 목적
가. 연구 동기 및 목적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다. 현재 그에 대한 평은 분분하지만, 그들을 살펴보면 대개 두 가지 의견으로 나눌 수 있다. 카이사르는 ‘학살자’였다는 의견과 ‘정치가’였다는 의견. 따라서 우리는 현대법과 로마법의 구체적인 조항들과, 카이사르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카이사르를 몇 가지 큰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해보고자 한다.
로마법으로 평가한 카이사르. 그리고 현대법으로 평가한 카이사르. 마지막으로 도덕으로 평가한 카이사르. 그러나 우리는 이 모두 다양한 관점에 따른 해석의 결과이므로 어느 하나가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나. 연구방법
코르넬리아 법을 포함한 여러 로마현대법 관련 책들을 통한 조사, 그리고 카이사르와 관련된 책들을 통하여 자료를 모은다. 또한 필요에 따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한다.
덧붙여 코르넬리아 법에 대한 설명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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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밖에 없었다.
이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동생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형인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이다. 이들은 호민관으로서 귀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토지제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형인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는 암살당하게 된다.
기원전 122년, 동생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는 호민관에 당선된다. 그는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토지개혁을 통해 자영농의 부흥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나 원로원을 제압하는 것에 실패하고 무력으로 원로원에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군인들을 포함한 폭력 집단을 동원하여 가이우스 그라쿠스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 3,000명을 무참히 학살하여 티베르 강에 수장하였고 그들의 재산도 처분하여 공공금고에 충당했다.
이와 같이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마리우스 등 다양한 개혁가들이 등장했지만, 로마 공화정의 압박 아래 큰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로마는 군인 정치가들의 권력다툼 속으로 혼란에 빠졌고, 이 때 카이사르가 등장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가문은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으나 그의 외가 쪽이 로마 귀족사회에 큰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카이사르의 고모부가 되는 평민 출신 집정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카이사르를 적극 지원하면서 카이사르는 로마 정치계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민중파의 대표인 고모부를 두고 있었고, 그 자신도 민중파를 지지하고 있었기에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로써 카이사르는 로마의 제 1권력자가 되기 위한 발판을 닦아 놓았던 것이다.
기원전 60년경,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세 정치가는 밀약을 맺게 된다. 폼페이우스의 경우 원래 동방원정을 나섰던 로마의 장군이자 귀족으로, 전쟁 이후 퇴역 군인들에 대한 원로원의 냉담한 반응과 동방 원정을 승인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원로원에 대해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