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의 시대 구분
-고전문학
1) 상고시대
한국문학의 여명기(黎明期)는 멀리 기원을 전후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민족의 경우이거나 문학은 시가(詩歌)와 무용과 음악이 한데 어울린 종합적인 원시예술의 형태로 발생하였음을 본다. 한국의 경우도 옛 기록에 나타나는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그리고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삼한(三韓)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통해 이루어진 가무(歌舞)와 음주(飮酒)의 습속에서 고대가요의 원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가요는 민족 고유의 신앙이나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어떤 특정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와 같은 종합예술은 사회적인 통일을 위한 정치적인 기능과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고 악령(惡靈)에 의한 재앙을 면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기능 및 노동의 피로를 줄이고 식생활에 안정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식으로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이 점차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생활수단이 분업화되어가면서 예술도 차차 종합적인 형태에서 해체 ·분화되어 표현방법이 다양해지자 시가 ·무용 ·음악 등 개별적인 분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따로 떨어져나온 시가는 구전(口傳)의 형태로 전승되면서 구비문학(口碑文學)을 이루고 문자를 갖게 된 이후 그것이 문헌에 정착됨으로써 신화와 전설 또는 고대가요의 한역가(漢譯歌) 등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와 같은 신화와 전설이 수록된 옛 문헌으로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하여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 등이 있고, 금석문(金石文)인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의 비문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이들 옛 기록들에는 한국의 국조(國祖) 신화인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생략)
2)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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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대한 판도를 개척하던 고구려인의 기개는 웅혼(雄渾)하고 동적(動的)인 서사문학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고구려의 건국 신화 이외에도 《유리왕전설》 《온달(溫達) 설화》 《미천왕(美川王) 설화》 《호동왕자(好童王子) 설화》 등의 여러 전설 ·설화를 형성하였다. 고구려의 가요로서 그 가명(歌名)만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내원성가(來遠城歌)》 《연양가(延陽歌)》 《명주가(溟州歌)》 등이 있으나, 당(唐)나라의 장수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그 고도의 문물에 놀라 모든 전적(典籍)을 불살라버려 오늘날 고구려 문학의 전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백제는 육상으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는 한편 해상으로도 중국 육조(六朝)의 문물에 자주 접할 수 있어 한문학의 수준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에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고흥(高興)이 375년(근구수왕 1)에 지은 《서기(書記)》라는 역사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왕인(王仁)은 일본에 처음으로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해주어 그들의 한문학을 일으키는 등 일본 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잡아 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풍토의 혜택을 누리던 백제에는 주로 서정적인 문학이 융성하여 《선운산(禪雲山)》 《무등산(無等山)》 《방등산(方等山)》 《지리산(智異山)》 등 평화롭고 아름다운 가요를 많이 낳았으며, 오늘날 그 모습을 알 수 있는 노래로는 《정읍사(井邑詞)》 1편이 전한다. 그 밖에 백제의 대표적인 설화로는 《도미전(都彌傳)》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가로막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고유문화와 외래문화를 서서히 융합시키는 작용을 하여 3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신라 역시 고구려나 백제와 비슷한 시기에 한자가 전해졌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거칠부(居柒夫)가 《국사(國史)》를 편찬한 시기는 545년(진흥왕 6)으로 백제보다 거의 2세기나 뒤진 때였다. 진덕여왕(眞德女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