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주 호남, 망각과 기억의 변주(變奏)
1차시.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2차시. 태조의「훈요십조(訓要十條)」와 백제사론(史論)
3차시. 호남 인심ㆍ풍속론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 조직하여 기백(幾百)에 이르렀고 회원 수는 10만을 헤아렸다. …최근 광주대소작쟁의, 순천절초동맹, 광양 소작쟁의, 암태도소작쟁의, 도초도 소작쟁의, 목포제유직공동맹파업, 담양정미직공 동맹파업은 세인의 이목을 경동시킨 대(大) 계급쟁의였다.”(『시대일보1)』1926년 6월 23일)
1-2. 일제 강점기 농민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진도 농민단체의 선언문: “전쟁은 평화의 근본이다. 머뭇거리지 말자. 지주의 횡포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1-3. 어느 자작지주(自作地主)의 ‘신(新)지주’ 비판 : 순천군 상사면 운곡리 최익련(崔益連)(『동아일보』1923년 11월 6일).
① 지금부터 20년 전에는 삼분경작(三分耕作)이란 농촌 숙어가 있었는데 소작인이 2/3를 가져가고 1두락에 5ㆍ60전의 세금을 부담하였다.
② 현재의 5할 소작료는 농사실정을 모르는 신사계급지주의 책상 위의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소작인에게 이익이 없음은 물론이고 1년 동안 의 농사비용도 충당할 수 없다.
③ 지주가 소작료만을 챙기려고 농촌을 퇴폐시키고 선량한 소작인을 악독하게 하니 이것이 바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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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채택. 민족민주화성회 개최, 5월 14일 이내 비상계엄 즉각 해제, 휴교령 거부, 대학인의 행동 통일’ 결의(~5월 16일까지).
② 1980년 5월 15일, <제2 시국선언문> 발표: ‘유신잔당의 국권찬탈 음모를 분쇄하고자 우리 대학인의 민주역량을 총집결하여 반민주 반민족 세력과의 성전을 엄숙히 선포한다.’
③ 1980년 5월 18일
④ 1980년 5월 19일 들불야학의 〈투사회보〉배포(범시민 민주투쟁위원회와 학생혁명위원회 명의)
1-9. 빛과 길과 땅: 이 강좌는 무엇을 찾아가는가?
① 大抵卜居地也 地理爲上 生利次之 次則人心 次則山水 四者缺一 非樂土也.
② 觀國之光 尙賓也…觀我生 觀民也
③ 人能弘道 非道弘人
④ 坤厚載物 德合无疆 含弘光大 品物咸亨…行地无疆 柔順利貞 君子攸行: 땅은 두텁게 만물을 담고 있으니 그 덕은 끝이 없으며, 품은 것마다 빛나고 넓으니 만물이 형통하는 데가 땅이다. 또한 아무리 가도 끝이 없지만 유순하고 티 없이 이로우니 군자가 가야 할 데가 땅이다.
2. 「훈요십조(訓要十條)」와 백제사론(百濟史論)
2-1.「훈요십조(訓要十條)」8)
“차현(車峴) 이남 공주(公州) 강 밖의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고 인심 또한 그러하니 저 앨 주군(州郡)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거나 왕후(王候)ㆍ국척(國戚)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국가의 변란을 꾀하거나 통합에 따른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사진 2-2. 신숭겸(申崇謙)9)의 용산재
2-3. 김종직(金宗直)10)의 「과차현(過車峴)」
車峴南人勿借津 차현의 남쪽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 했으니
斯言如?復如神 이 말이 장난 같으나 신명 같기도 하네
那知五百年將盡 어찌 알았으랴 오백 년이 다할 무렵에
一朶完山紫氣新 한쪽 가지 완산에 서기가 새로울 줄을
2-4. 고경명(高敬命)11)의 창의문
우리 호남은 聖祖께서 黃山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서 三韓을 다시 일으킨 공로가